그 남자는 스스로 밤길의 제왕이라고 자부했다
검은색 K5를 몰고 어두운 고속도로를 질주할 때면
세상의 모든 차량이 장애물처럼 느껴졌다
하이빔은 항상 켜둔 채, 방향지시등 따위는 약자들이나 쓰는 것이라 여겼다
차선 변경은 예고 없이, 앞차가 조금이라도 느리면 경적을 길게 울려댔다
"운전 못하면 그냥 나오지 마!"
이 말은 그의 입에서 떠나지 않는 주문 같았다
신호등에서, 톨게이트에서, 휴게소에서도 내뱉는 말
마치 이 모든 도로가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그날 밤도 다를 것 없었다
자정을 넘긴 시각
빗방울이 아스팔트를 적시고 간 고속도로
그는 평소처럼 가속 페달을 밟으며 앞차들을 하나씩 제치고 나갔다
추월할 때마다 느끼는 쾌감이 그를 더욱 거칠게 만들었다
그런데 백미러에 이상한 것이 비쳤다
은색 세단 하나가 상당한 거리를 두고 뒤따라오고 있었다
헤드라이트가 꺼진 채로
처음엔 고장 난 차려니 했지만, 그 차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마치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뭐 저딴 차가..."
그가 속도를 올리자 은색 차도 속도를 올렸다
차선을 바꾸자 정확히 같은 타이밍에 같은 차선으로
마침내 그 차는 그의 K5 바로 옆에 나란히 섰다
이때부터 모든 것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으면 은색 차도 정확히 같은 각도로 따라왔다
왼쪽으로 피하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마치 두 차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여 있는 것처럼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속도계 바늘이 위험 구간을 가리켰지만 은색 차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엔진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채로
앞쪽에 갈림길이 나타났다
하나는 본선 도로, 다른 하나는...
어라? 언제부터 저런 길이 있었나?
오른쪽으로 빠지는 도로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가로등도, 차선 표시도 없는 낡은 길
그런데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하지만 분명히 처음 보는 길
그는 당연히 핸들을 왼쪽으로 돌렸다
그런데 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핸들을 아무리 돌려도 K5는 직진만 했다
아니, 정확히는 오른쪽 도로를 향해 서서히 기울어지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차를 그쪽으로 끌어당기는 것처럼
"야! 이 미친—"
그가 소리치려던 순간, 옆의 은색 차 창문이 스르륵 내려갔다
운전석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엔 사람이 아닌 무언가가 앉아 있었다
얼굴이라 할 만한 것은 없었다
그저 짙은 어둠이 사람의 형태를 하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그 도로를
그 어둠을
그 형체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것을
10년 전 새벽, 똑같은 고속도로에서
그때도 그는 이런 식으로 운전하고 있었다
앞에 낡은 소나타 한 대가 느릿느릿 가고 있었고
그는 경적을 울려대며 바짝 뒤를 따라붙었다
그 소나타의 운전자는 초보 같아 보였다
겁에 질린 채 자꾸만 백미러를 확인하며 서둘러 길을 비키려 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더 가까이 붙어서 상향등을 번쩍거리며 위협했다
"운전 못하면 그냥 나오지 마!"
그때 그가 외친 말
그리고 그 직후, 소나타는 갓길로 급하게 빠지려다 균형을 잃고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차는 도로 아래로 굴러떨어졌고, 그는 그냥 지나쳐버렸다
뉴스에서 사고 소식을 들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 형체가 그를 바라보는 순간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그 소나타의 색깔은 은색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그가 다시 핸들을 돌리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K5는 오른쪽 도로로 완전히 접어들었고
그 길은 점점 좁아지며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길
차선도 지워진 채 갈라진 아스팔트
그리고 저 멀리, 끊어진 도로의 끝
"미안해! 미안하다고!"
블랙박스를 향해 외친 그의 마지막 절규
하지만, 은색 차에서 들려온 것은
"운전 못하면 그냥 나오지 마!"
10년 전, 그가 내뱉었던 그 말
K5는 끊어진 도로 끝에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사흘 후, 경찰은 수년 전 사고로 폐쇄된 구간에서 반파된 검은색 K5를 발견했다
운전자는 실종되었고, 그를 찾기 위한 수색은 계속되었지만 결국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블랙박스에는 충돌 직전까지의 영상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은색 차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마지막에 기록된 음성이 하나 있었다
"운전 못하면 그냥 나오지 마!"
그 이후로 가끔 야간 고속도로에서 은색 세단을 목격했다는 제보가 들어온다
헤드라이트도 없이, 소리도 없이 달리는 차
난폭 운전자들의 뒤를 따라붙는다는 그 차
그리고 며칠 후, 그들은 모두 사라진다
사고 차량 블랙박스에 마지막으로 남는 음성은 항상 같다
"운전 못하면 그냥 나오지 마!"



정의구현이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