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드디어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20년 넘게 전세살이만 하다가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된 집이었다.
32평, 신축 아파트.
평생 모은 돈과 대출로 간신히 마련한 보금자리였다.
입주 전날 밤, 이삿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누굴까 싶어 문을 열어보니 60대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색깔이 묘하게 바랜 느낌이었다.
얼굴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평범해 보이는데 뭔가 어색한 구석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내일 입주하시는 분이시죠?"
"네, 맞는데요."
"저는 이 동네에서 오래 일하고 있는 무당입니다. 새로 이사 오시는 분들께 문전굿을 해드리고 있어요."
문전굿이라니. 요즘 시대에 그런 걸 믿는 사람이 있나 싶었다.
"아, 저희는 그런 거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아니에요. 이 아파트는 꼭 해야 해요."
그 말을 할 때 여자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왜요?"
"이 땅에... 좋지 않은 것들이 많아요. 그냥 이사 오시면 안 됩니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미신을 믿지 않는 성격이라 정중히 거절했다.
"정말 괜찮아요. 좋은 말씀 감사드려요."
"그러시면... 이거라도 받아두세요."
여자가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이게 뭔가요?"
"부적이에요. 혹시나 해서 준비해온 거예요. 꼭 현관문에 붙여두세요."
뭔가 거절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일단 받기는 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꼭 붙여두세요. 약속하세요."
여자의 눈이 이상하게 반짝였다.
밤늦은 시간인데 눈동자가 너무 또렷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제야 여자가 돌아갔다.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뭔가 어색했다.
걸음걸이가 묘하게 어긋나 보였다.
다음날, 이사를 마치고 저녁에 새 집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부적은... 솔직히 까먹고 있었다.
이사 정리하느라 바빠서 봉투를 어디에 뒀는지도 기억이 안 났다.
새벽 3시쯤이었을까.
갑자기 현관문 쪽에서 소리가 났다.
똑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이상했다.
아파트 현관문은 오토 락이 걸려 있어서 함부로 올라올 수 없는데.
그리고 이 시간에 누가 찾아온단 말인가.
똑똑똑.
다시 소리가 났다. 조금 더 크게.
무서워서 문구멍으로 밖을 내다봤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소리는 계속 났다.
똑똑똑. 똑똑똑.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부적 안 붙이셨죠?"
어제 그 무당이었다.
"어... 어떻게 제 번호를..."
"지금 문 두드리는 소리 들리시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그걸 아세요?"
"제가 막고 있어요. 지금 당장 부적을 붙이세요."
"뭘 막고 있다는 거예요?"
"설명할 시간 없어요. 빨리 부적을 찾아서 현관문에 붙이세요. 지금 당장요."
전화가 끊어졌다.
문 두드리는 소리는 점점 더 거세졌다.
이제는 두드리는 게 아니라 때리는 수준이었다.
쿵쿵쿵쿵.
미친 듯이 부적을 찾았다. 이사 상자들을 뒤지고 또 뒤졌다.
쿵쿵쿵쿵쿵.
소리가 더 커졌다. 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부적을 찾았다.
봉투를 뜯어보니 하얀 종이에 빨간 글씨로 뭔가 써져 있었다.
현관문에 달려가서 테이프로 붙였다.
그 순간, 모든 소리가 멈췄다.
완전한 정적이 찾아왔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데,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잘 하셨어요."
"대체 뭐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내일 밤에도 올 거예요."
"뭐가요?"
"이 아파트 지하에... 뭔가 묻혀 있어요. 30년 전부터. 그것들이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을 찾아와요."
"그게 뭔데요?"
"모르는 게 나아요. 중요한 건, 부적이 하루밖에 못 버틴다는 거예요."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내일 저녁 7시에 다시 찾아갈게요. 제대로 된 굿을 해드릴게요."
"얼마예요?"
"돈은 필요 없어요. 대신..."
여자가 잠시 말을 멈췄다.
"대신 뭐요?"
"절대 혼자 있으면 안 돼요. 내일까지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해요. 혼자 있으면... 부적으로도 막을 수 없어요."
전화가 끊어졌다.
다음날 하루 종일 친구와 친구 집에 있었다.
회사에는 사정을 말할 수도 없어서 그냥 감기 걸렸다고 핑계를 댔다.
저녁 7시 정각에 집으로 돌아왔다. 무당이 이미 와 있었다.
어제와 같은 바랜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곳곳에 뭔가 어두운 색의 얼룩이 있었다.
"들어가죠."
무당이 큰 가방을 들고 현관으로 향했다.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무당의 표정이 변했다.
"어? 이상하네요."
"뭐가요?"
"냄새가... 없어요."
"무슨 냄새요?"
"보통은 집 안에 그것들 냄새가 배어 있는데. 여기는 깨끗해요."
무당이 집 안을 돌아다니며 뭔가를 살폈다. 거실, 방, 화장실까지 구석구석 다 봤다.
"이상해요. 정말 이상해요."
"뭐가 이상한데요?"
"이 집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때 깨달았다.
부적을 자세히 본 적이 없었다는걸.
현관문으로 달려가서 부적을 떼어봤다. 빨간 글씨로 쓰인 내용을 읽어봤다.
한자였는데, 한 글자씩 읽어보니...
'此家之人已獻三十七魂'
아래쪽에는 더 작은 글씨로 이름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김민수, 박영희, 최철호, 이미경...
수십 개의 이름이 세로로 나열되어 있었고, 맨 아래 빈 줄에는 내 이름이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손이 떨렸다. 무당을 돌아봤다.
그런데 무당이 웃고 있었다.
입꼬리가 귀까지 찢어져 있었다.
"30년 전부터 이런 식으로 했어요."
그제야 알았다.
문 두드리는 소리도, 전화도, 모든 게 다 이 여자의 짓이었다는걸.
"새로 이사 온 사람들한테 문전굿을 해준다고 하면서..."
무당의 목소리가 점점 변하고 있었다. 남자 목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부적을 붙이게 해서..."
이번엔 아이 목소리였다.
"그 집 사람을 표시하는 거예요."
여러 목소리가 동시에 나왔다. 남자, 여자, 아이, 노인...
"이제 우리 차례예요."
무당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니, 얼굴이 여러 개로 나누어지고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 아파트에 귀신이 있는 게 아니라,
무당 자체가...
"30년 동안 이렇게 모은 거예요. 하나씩 하나씩..."
나는 현관문으로 뛰어갔다. 문을 열려고 했지만 열리지 않았다.
"도망갈 수 없어요. 이미 부적을 붙였으니까."
뒤돌아보니 무당이 서 있었다.
하지만, 이제 무당의 모습이 아니었다.
여러 사람이 겹쳐져 있는 모습이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수십 명이...
그리고 그들이 모두 같은 말을 했다.
"환영해요. 새 식구."
그날 밤 이후로 이 집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
부동산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한다.
입주민들이 하룻밤 지내고 나면 모두 사라져버린다고.
그리고 가끔, 새로 이사 오려는 사람들에게 연락이 온다.
60대 여자의 목소리로.
"문전굿 해드릴까요?"




그래 이런 전개일 줄 알았지...원 오브 매니일 줄은 몰랐지만 ㅠ